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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세계에 알린 작곡가 윤이상 !

우리나라의 대표 작곡가이자 20세기의 위대한 작곡가, ‘윤이상’ !

한국의 정서를 서양음악 속에서 펼쳐내다!

 

바로크 시대부터 오늘 날 까지, 서구의 정서를 가지고 이어져온 음악사에서 동양의 정서를 이해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그것도 잘 알려지지 않은 대한민국이라는 조그만 나라에서 온 음악가가 이를 이루어 내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해낸 작곡가가 있었으니, 바로 대한민국의 대표 작곡가 ‘윤이상(1917.9.17-1995.11.3)’이다.

 

IE001258012_STD.jpg현대음악을 공부하다 보면 빼놓을 수 없는 음악가가 바로 20세기 대한민국을 대표 작곡가 윤이상인데, 윤이상은 1917년 대한민국 경남 통영에서 태어나 평범한 공부를 하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그는 어린 시절 3년간 다녔던 서당에서 풍금을 처음보고는 서양음악에 대해 강한 호기심을 느꼈다고 한다. 그러던 중 13세 때 바이올린과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고 작곡을 해보는 등의 음악적인 재능을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음악공부를 하길 원했던 윤이상을 인정해주지 않았고 결국 부모님의 뜻에 따라 통영협성상업학교로 진학하게 된다. ‘예술가의 고집’이란 여간해선 꺾을 수 없다고들 하는데, 윤이상도 역시 예술가였다! 통영협성상업학교 진학 2년 후, 윤이상은 서울로 올라가 화성학 레슨을 받고, 서양음악 악보를 독학으로 공부하며 음악적 열정을 불태우기 시작한다. 이러한 윤이상의 열정을 꺾을 수 없었던 부모님은 상업학교에 진학하는 조건으로 그의 음악공부를 허락했고, 이에 1935년 일본 오사카의 상업학교에 진학 후, 오사카 음악학원에서 전문적인 음악공부를 시작한다.

 
Walter Grimmer and Marion Hofmann - 하프.. 윤이상 : Isang Yun Chamber Music  
 

윤이상의 작품을 이해하려면 역사적인 부분을 빼놓을 수 없는데, 윤이상의 일본 유학시절 당시는 일본에 의해 한국이 자유롭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특히나 이런 시기에 일본으로 유학을 간 윤이상은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이 사는 지역에서 살면서 억압받는 이들을 보고 사회적, 정치적인 사상을 갖게 되면서 우리나라가 일본에게서 해방되는 날까지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독립운동으로 조국에 대한 사랑을 실천한다. 그렇게 영광의 광복 후 한국으로 돌아와 교육분야와 개인적인 창작활동에도 활발히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대한민국에서의 음악적인 한계를 느끼고 20세기 작곡기법과 음악이론을 배우기 위해 1950년대에 유럽으로 떠나게 된다.    

윤이상은 유학 중 원시주의적 성향의 발레음악으로 새로운 음60091031215553_1_1.jpg악의 길을 제시해 준 [불새], [봄의 제전]의 ‘스트라빈스키’, 12음 기법을 창시한 ‘쇤베르크’, 침묵의 음악으로 유명한 [4분33초]의 ‘존 케이지’등 현대음악 대표 작곡가들과의 만남으로 현대 음악 기법을 터득하며 깊이를 더해갔다. 그는 기존의 기법들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음악을 만들어내길 원했고, 한국의 도교사상과 궁중음악을 바탕으로 한국의 정서를 표현해내는 독특한 음악세계를 창조하게 되었다.

당시 동양의 매력에 빠져 이를 표현하고자 하는 많은 예술가들이 있는데, 특히 드뷔시가 인상주의 기법을 사용하여 동양적인 인상을 주고자 했던 [영상]이란 작품이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역시나 동양인의 정서를 가진 윤이상이 표현해 낸 음악은 드뷔시의 것보다 더욱 신비로운 동양적 색채감을 풍기면서 서구예술가들에게 관심 받기 시작했고, 독일로 정착한 윤이상은 1965년 불교를 주제로 한 오라토리오 [오, 연꽃 속의 진주여]와 1966년 교향곡 [예악]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는다.

 
Eduard Brunner - 클라리넷 솔로를 위한 피.. 윤이상 : Isang Yun Chamber Music  
 

이처럼 서구에서는 뛰어난 음악가로 인정받는 윤이상이지만, 대한민국의 남북관계에 관련해 친북성향을 가지고 있어 우리나라에서는 논란이 되며 저평가되는 음악가이다. 윤이상은 1963년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이후에도 재차 북한을 방문하면서 김일성과 친분을 쌓기 시작하였고, 김일성은 그의 음악활동을 위해 북한에 15층짜리 건물을 짓는 등 후한 대접을 해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반공을 국시로 내세우던 박정희 정권이 이를 가만히 둘 리가 없었다.

이에 1967년 윤이상과 그의 부인은 중앙정보부에 의해 북한에서 납치되어 서울로 소환되었고, 간첩으로 몰려 사형선고를 받는다. 형무소 안에서 작곡을 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그는 희곡 오페라 [나비의 꿈]을 완성 후, 집행유예로 먼저 풀려났던 부인에게 이를 건낸다. 부인은 [나비의 꿈]을 독일으로 보내어 1969년 [나비의 미망인]이라는 제목으로 초연, 31회의 커튼콜을 받는 엄청난 호평을 받았고, 윤이상의 당시 상황을 알게 된 200여명의 유럽 음악인들은 대한민국 정부에 탄원서를 내면서 윤이상의 수감에 항의하기 시작했다. 이를 추진한 대표 음악가로는 스트라빈스키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었고 이 외에도 리게티, 슈톡하우젠 등의 대단한 명성을 가진 음악가들이 윤이상의 자유를 위해 그를 응원했다. 국가 내부의 문제에서 국제적인 문제로 이슈화 된 이 ‘동백림 사건’은 세계적인 탄원으로 결국 1969년 2월 25일, 윤이상을 석방시킨다. 석방 이후, 그는 독일로 귀화하여 베를린 음악대학의 교수로 지내는 등 유럽에서 활발한 음악활동을 펼쳤다. 

43263.jpg우리나라에서는 ‘작곡가 윤이상’을 정치적인 문제로 저평가하고 있지만, 유럽에서 그의 명성이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는 아직까지 ‘동백림 사건’으로 극과 극의 평가를 받는다. 정치적인 생각을 모두 버리고 순수한 음악적 입장에서 작곡가 윤이상을 바라본 다면,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작곡가 윤이상’이라고 당당히 말할 만 하지 않을까? 

 윤이상의 동양적 색채가 매력적인 [윤이상 : Isang Yun Chamber Music]은 그가 겪었던 모든 기억과 지나온 삶의 깊이를 바탕으로 만들어낸 ‘윤이상의 음악세계’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앨범이다.

 

“나의 작품은 한국에서는 연주할 사람도 없고 연주한다고 해도 전혀 모를 것이 사실이오.다만 나의 작품이 극히 일부의 젊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것은 사실이고,

그 사람들이 후일 한국의 작곡계를 이끌고 나갈 것을 바랄 수는 있을 것이오"

 

- 윤이상 -

 

 
Eduard Brunner and Wilanow Quartet - 클.. 윤이상 : Isang Yun Chamber 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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