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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서구에서는 뛰어난 음악가로 인정받는 윤이상이지만, 대한민국의 남북관계에 관련해 친북성향을 가지고 있어 우리나라에서는 논란이 되며 저평가되는 음악가이다. 윤이상은 1963년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이후에도 재차 북한을 방문하면서 김일성과 친분을 쌓기 시작하였고, 김일성은 그의 음악활동을 위해 북한에 15층짜리 건물을 짓는 등 후한 대접을 해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반공을 국시로 내세우던 박정희 정권이 이를 가만히 둘 리가 없었다.
이에 1967년 윤이상과 그의 부인은 중앙정보부에 의해 북한에서 납치되어 서울로 소환되었고, 간첩으로 몰려 사형선고를 받는다. 형무소 안에서 작곡을 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그는 희곡 오페라 [나비의 꿈]을 완성 후, 집행유예로 먼저 풀려났던 부인에게 이를 건낸다. 부인은 [나비의 꿈]을 독일으로 보내어 1969년 [나비의 미망인]이라는 제목으로 초연, 31회의 커튼콜을 받는 엄청난 호평을 받았고, 윤이상의 당시 상황을 알게 된 200여명의 유럽 음악인들은 대한민국 정부에 탄원서를 내면서 윤이상의 수감에 항의하기 시작했다. 이를 추진한 대표 음악가로는 스트라빈스키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었고 이 외에도 리게티, 슈톡하우젠 등의 대단한 명성을 가진 음악가들이 윤이상의 자유를 위해 그를 응원했다. 국가 내부의 문제에서 국제적인 문제로 이슈화 된 이 ‘동백림 사건’은 세계적인 탄원으로 결국 1969년 2월 25일, 윤이상을 석방시킨다. 석방 이후, 그는 독일로 귀화하여 베를린 음악대학의 교수로 지내는 등 유럽에서 활발한 음악활동을 펼쳤다.
우리나라에서는 ‘작곡가 윤이상’을 정치적인 문제로 저평가하고 있지만, 유럽에서 그의 명성이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는 아직까지 ‘동백림 사건’으로 극과 극의 평가를 받는다. 정치적인 생각을 모두 버리고 순수한 음악적 입장에서 작곡가 윤이상을 바라본 다면,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작곡가 윤이상’이라고 당당히 말할 만 하지 않을까?
윤이상의 동양적 색채가 매력적인 [윤이상 : Isang Yun Chamber Music]은 그가 겪었던 모든 기억과 지나온 삶의 깊이를 바탕으로 만들어낸 ‘윤이상의 음악세계’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앨범이다.
“나의 작품은 한국에서는 연주할 사람도 없고 연주한다고 해도 전혀 모를 것이 사실이오.다만 나의 작품이 극히 일부의 젊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것은 사실이고,
그 사람들이 후일 한국의 작곡계를 이끌고 나갈 것을 바랄 수는 있을 것이오"
- 윤이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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